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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진짜 열심히 살았는데. 공룡은 자신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다. 드루이드가 되기 위해서

공부했던 시간들도, 나름대로 자신의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했던 시간들도, 중요한 부품 하나가 쏙 빠져버린

것처럼 가장 안 쪽부터 서서히 붕괴되어가는 마을을 보며 드루이드가 보낸 시간들은 충분히 괴로웠고 충분히

피곤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픈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그럴때마다 그는 자신을 세뇌하듯이 혼잣말을

해댔다. 본인들이 자초한 일을 제가 어떻게 수습하느냐며,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본인 스스로를

위해 되새김질하는 말 하나하나에 뼈가 들어있었다. 그러게 왜 그걸 못 막았을까. 그 망할 별조각에 대한 연구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그러다가도 또 문득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알고 그걸 막아.

짜증나게.

공룡은 가끔, 저 매일 밤 떨어지는 별조각들이 무서웠다. 저 별조각들이 마치 마을의 종말을 알리는

카운트다운같아서, 닿자마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는 것들이 마치 제 미래와 닮아서. 그게 싫어서 언제는

아이처럼 별조각들을 잡으려고 노력해봤다.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손에 닿자마자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처럼 별조각이 파스스 사라져버리는 게 야속했다. 미웠다. 굳이 자신을 이 곳에 오게 한 세계수도, 마을

사람들도, 나도. 정말 모든게 허탈하다는 기분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이장님같은, 세월의 흐름을 시시각각

체험할 수 있는 인간이나 드는 기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

그렇게 살아왔었다. 깊은 바다 속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으로 드루이드는 자신의 숲을 지키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 숲만 지키면 되는 거 아닌가. 논리적으로만 맞는 그딴 생각이나 하며 세월을 죽여왔다. 열심히

살아온 그의 시간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해결책도 주지 못했다. 그는 그저 그 마을이 망하는 것을 지켜보며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다시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법한 마을에 그가 품을 기대는 더 이상 없었으니 말이다.

오지도 않을 영웅을 기다리는 것도 지쳤었다. 천천히, 느리게,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는 마을을 애써 무시하며

그는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은 저택을 내려다보곤 했다.

마을회관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시는 활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그 날도 그저 그런, 한 여름날 땡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덥다, 중얼거린 드루이드는

습관처럼 저택을 내려다보았다.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조그만 숲에 뭐 볼 것이 있다고. 그래서

항상 저택 창문 사이로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었다. 분홍머리 앨리스가 일층과 이

층을 왔다갔다하며 움직이는 걸 보자면 시간이 어느새 흘러 저녁이 되기 일쑤였다. 딱히 드루이드라고 할 일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마을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씨앗이나 귀한 식재료들을 파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는

그 날도 그럴 줄 알았다.

드루이드는 이상한 걸 봤다. 이질적인 목소리를 들었다. 보통 여자애들 치고는 조금 낮은 이질적인

목소리, 마을 사람 중에서는 못 본 것만 같은 긴 갈색 참머리. 뭐야? 드루이드가 눈을 찌푸렸다. 관광객이래도

이상하고 이주민이래도 이상한, 다 망해가는 마을에 외부인이라니. 기묘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찾아오려나.

...그러길 바랬다. 궁금했다. 저 애는 도대체 왜 이 마을에 찾아왔는지.

만날 수록 궁금한 점만 많아지는 애였다. 진짜 이상한 애였다. 이 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서 왔댄다. 진짜

뭔 개소린가,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이 도대체 어떻게 이 마을을 일으켜 세우겠단

건지. 별조각을 사용해서 이 마을을 일으키겠다는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 전에 그런

포부를 품고 왔던 이가 있었던 것도 같은데. 어떻게 됐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다만, 결과를 보니 썩 좋은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싶었지. 그랬었는데, 분명히 그랬었는데.

걔는 성공해냈다. 올 때마다 이상한 헛소리나 해대던 애였는데. 그 애는 보란듯이 플레전스를 깨웠고,

에스더가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막았으며 왕실 출품까지 해냈다. 참 웃긴 일이었다. 고작 열 흘만에 걘 이

모든 일들을 해냈다. 열흘, 그러니까 밤이 아홉번 찾아오고 아침이 열 번 찾아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그 애는,

자신이 못했던 것들을 해냈다. 원래 이상한 애들이 혁신을 만든다고는 하더라만은. 음, 잘 모르겠다.

 

공룡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오르골을 돌렸다. 그 어떤 오르골보다도 부드러운 멜로디가 들렸다. 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렇게 마음에 드는 건 또 처음이었다. 괜히 목이 허전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드루이드라는

사명감을 부여받은 그 순간부터 차고 있었던 세계수에게서 받은 목걸이는 이제 없다. 그 이상한 애, 모든 게

궁금해지는 그 애한테 줬으니까 말이다. 그게 공룡에게는 얼마나 가치있는 물건인지 걘 모를 거다. 그러니

받자마자 냅다 지지라며 기겁했지. 지가 진짜 어린애도 아니고 지지가 뭐냐? 하여간 진짜로 이상한 애였다.

사실 공룡도 잘 몰랐다. 자신의 피부나 다름없었던, 제게 있는 것이 당연한 일이던 세계수의 목걸이를 왜

선뜻 만난 지 열 흘도 안 된 애한테 건네줄 수 있었는 지 말이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제 모든 감정은 이 하나로

귀결됐다. 그 애한테 제 일부와도 같은 목걸이를 줬던 것도, 마음에도 없는 잔소리를 했던 것도, 걔 방에

 

들어갔다가 처맞고 앵무새 자아를 날려버렸던 그 일도. 그리고 그 애를 반겼던 것도 말이다. 그 모든 것들이 그냥

그러고 싶었다는 모호한 말 하나로 끝났다. 차라리 그런 말이 없었더라면 자신은 자신의 상태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오르골의 멜로디는 계속 흘러나왔다. 잔잔한 멜로디는 꼭 이 마을을 닮았다. 평화롭고, 잔잔하고.

관광지로 개발되던 예전만큼의 엄청난 부흥을 누리지는 않지만 그저 조용하게 순리대로 흘러가는 것이 말이다.

영원한 제 숲의 녹지와는 좀 달랐다. 제 숲은 자신이 있는 한 영원히 푸르름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저 마을은

시간이 감에 흘러서 천천히, 그리고 많이 변하게 되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다. 인간과 비슷하지만

인간이 아닌 존재, 나는 그런 그들에게 그저 이질적인 존재일 뿐일 테다.

마녀도 마법도 마법공학도, 심지어는 동방의 마법까지 사용하는 이 마을에도 이질적인 존재는 있기 마련

아닌가. 태생적으로 오래 사는 것들은 인간들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자신은 그들과 나 사이에 선을 그어놓고

있었다. 아마 그들 역시도 본인들과 내 사이에 어떤 분명한 선을 그어두었을 것이다. 딱히 속상할 일도, 서운해

할 일도 아니었다. 이 마을이 아니더라도 드루이드들과 인간 사이에는 그러한 선이 있었다. 아주 예전부터

오랫동안 그래왔었는데.

 

무심코 튀어나간 말이었다. 주변 사람들한테 다정하게 대해주고, 선물도 좀 챙겨주고, 대화도 하고,

드루이드 섬에 자꾸 놀러와주고. 처음엔 그저 천년 넘게 산 내가 삼십도 안 된 핏덩이한테 할 법한 잔소리를 했던

거였는데. 제 잔소리에 꼰대라고 짜증내면서 숲을 나가던 그 애가 후배라는 애한테 하는 말이 왜 그렇게 크게

들렸는지 몰랐다.

 

‘자기 외롭단 이야기를 길게도 하네, 그치?’

 

그 조그만 소리가 공룡의 고막에 꽃혀들어왔다. 외롭다, 외롭다? 잘 모르겠다. 자신은 원래 태어날 때부터

이런 존재였는데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게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내가 지키는 숲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고,

숲에서 사는 미친 인간이 있는게 아닌 이상 드루이드는 원래 혼자인 종족이니까. 유전적으로 이런게 가능한가.

아니, 애초에 드루이드가 외로움이라는 걸 느낀다면 그건 무슨 결함이 있는 거잖아.

그리고 나 이렇게 오랫동안 살았는데.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데 내가 외롭다니. 되게,

약해보이고 별로지 않나.

난 외로운 게 아닌데.

그냥, 음.

난 사람을 좋아하는 것 뿐이라고 할까.

드루이드는 그렇게 결론 내리기로 했다. 자신이 외롭다고 한 건 그 이상한 애가 잘못 생각한 거라고, 걘

이상하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모든 책임을 삼십도 안 먹은 애한테 떠넘긴 드루이드는 정작 그 이상한

인간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단 한 줄도 몰랐다.

-

외로운 자만큼 곁을 내어주지 않는 사람은 없다. 잠뜰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뜰은 누구보다 외로운 자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그걸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외롭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은 밑바닥 블록이 하나만 남은 젠가처럼 그는 그 사실을 회피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의 외로움은 이방인이었던 자신이 처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짙었다. 마을 주민들은 이미 너무나도

익숙해져버려서, 혹은 그들의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인 드루이드만은 무너지지를 않기 바랐기 때문이라서,

그들은 알면서도 회피해 온 것일수도 있고.

그래서 잠뜰은 앨리스에게 물었다. 언니, 드루이드는 어떤 사람이에요? 앨리스는 그 질문에 장난스럽게

답했다. 단순하고 이상한 사람이지~. 그 말 한 마디에서 잠뜰이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많았다. 첫번째, 드루이드

공룡의 단순함은 단지 그의 방어기제일 뿐이다. 둘째, 그의 본질을 앨리스는 알고 있다. 셋째, 그럼에도 그것을

그저 이상한, 자신이 떠맡을 수 없는 어떤 무언가로 규정하고 다가가고 싶지 않아한다. 넷째, 마을 사람들 역시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이들은 공룡을 자신과는 다른 어떠한 존재로 규정하고 굳이 그에게 의지할만한 구석은

되고싶지 않아하는 것일테다.

이에 대한 이유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뻔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마을에 생겼던 문제를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그 감정을 오롯이 드루이드에게 의지했던 거다. 그들에게 드루이드는 자신들이

의지할 구석이었기에 그가 무너져가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고. 그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이미 오랜

시간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의지할 초월적인 존재라는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일테다. 그리고, 그건

공룡도 다르지 않을 테다. 공룡이 아닌 드루이드라는 자신의 정체성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을 막중한 책임감.

잠뜰은 이 모든 것들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잠뜰은 그가 외로워보였다. 누군가가 채워주더라도 그와 같은 초월적 존재가 아닌 이상 그에 비해 인간의

생명은 너무나도 짧았다. 과거를 회상할 때 10년 단위로 떠올리는 인간들과는 다르게 그는 100년 단위로

떠올리지 않는가. 이 이질적임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마을을 부흥시키는데 성공하고 과거의 저주까지 다 풀어준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하나. 이런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내가 무슨 해결사도 아니고, 애초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의뢰한 것도 아닌 짓에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을 써야하는 건가. 그러게, 드루이드 섬에 자꾸 놀러와주라는 말만 안 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 쓸 일도 없었을 텐데. 그것이 공룡 본인도 생각지도 못할 만큼 무심코 튀어나온 말일 것을 알면서도 잠뜰은

또 그를 탓하는 것이다.

괜히 본 적도 없는 신을 찾았다. 세계수님, 도대체 왜 드루이드라는 생물을 저렇게까지 외로운 종족으로

만들었나요? 드루이드들이 모두 다 저런 성격이라면 조만간 드루이드들을 모아서 정신과에 보내야할 것

같습니다. 아니라면 쟤만 특이체질이라서 외로움을 느끼는 건가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저에게 이런 시련을 또

주십니까? 한번도 본 적 없는 세계수를 탓하며 잠뜰이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한 여름날의 땡볕에 달아오른

책상이 뜨끈뜨끈했다. 오늘은 드루이드를 찾아가야하는 날이었다. 필요한 재료도 있고, 이야기도 하고. 이삼일에

한 번씩은 찾아가곤 했는데 오늘따라 그러기가 죽도록 싫었다. 귀찮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또, 이 망할 놈의

세계수의 설계 미스로 태어난 드루이드의 외로움을 옆에서 견뎌내기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다. 도저히 한

여름날 땡볕의 숲 속에서 할 짓은 아니었다.

잠뜰은 외로웠다. 은하수 잡화점이 문을 닫은 밤 야심한 시각 불쑥불쑥 찾아오는 공허와 쓸쓸함을 그 누가

외로움이 아닐 것이라 부정할까. 으레 사람이라면 모두가 느끼는 감정일테였다. 가족이 있건 없건, 연인이 있건

없건 상관 없이 사람이라면 반드시 찾아오는 감정이 외로움이었다. 가족과 자신의 고향을 떠나온 자신도,

 

덕개도-물론 덕개에게 외롭냐고 물어본 적은 없다만– 심심치않게 느끼는 감정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외로운 사람이라 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그렇게 정의함으로서 그 지칭되는 사람은 그저 ‘외로운

사람’으로밖에 남지 않으니 말이다. 그 말은 꼭 그 인생의 외롭지 않았던, 행복한 순간을 다 지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잠뜰은 공룡이 외로운 사람이라고 여겼다. 왜냐면 그는, 자신이 외롭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잠뜰은 공룡이 안쓰러웠다. 자신이 외로운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삶은 지옥이 된다. 특정한 대상이

정해지지 않은 실체 없는 그리움을 그저 한 구석에 켜켜히 쌓아놓으며 살아야한다. 대상이 없는 그리움은

외로움이 되고, 외로움은 단절을 만든다. 그저 무한한 굴레에 뒤덮여서 자신이 외로운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잠뜰의 눈에는 공룡이 딱 그랬다. 실체 없는 그리움을 인정하지 못해 쌓아놓기만 했던 안쓰러운 사람.

 

처음에는 짜증이었다. 드루이드라는 인간이 도대체 왜 저렇게 마을을 싸돌아다니는지. 그냥 얌전히

돌아다니기만 하면 몰라 하는 짓이 딱 어린 애 장난같았다.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사고를 치고, 장난을

걸고,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본인은 그것이 어떠한 변장술이 아니라 인격이라고 설명하며 본인의 다른 인격이

친 사고들에 대해 모르는 척을 했지만.... 글쎄, 잠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라마나 고양이같은 어떠한 외형 변화로 이제껏 그가 억제해왔던 행동이 터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고치고 장난이나 치는 그런 초등학교도 안 들어간 어린이가 할 법한 행동이 적어도 그 성에서는 안 나오지

않았는가. 잠뜰이 제 목에 걸린 초록색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천년이나 꼈으면 때가 탈 법도 한 보석은 여전히

갓 세공된 것처럼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었다. 조금 때가 탄 것같은 목걸이 줄과는 정반대로 눈이 부시게

반짝이는 보석은 그가 열심히 관리했었다는 걸 뜻한다.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씻고 닦으며 제 몸처럼 관리한

것을 그는 제게 준 것이었다.

그저 가지고 있으랜다.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고, 사회에서도 인정받을만큼 가치가 있는 물건이니–내가

물질만능주의자인 것은 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가지고 있으란 말만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존나

책임감이라고는 일도 없는 발언이었다. 천년이나 살았다면서 도대체 왜 삼십도 안 먹은 애새끼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지 모르겠다. 아, 대가리 아파. 잠뜰이 다시 한 번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쿵! 하는 큰 소리에 아랫층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뭔 소리야? 몰라요, 졸았나? ...침대에서 떨어졌나? 이 새끼들은 사람 걱정이란

걸 모르는 새끼들인지 올라와보는 놈이 단 한 놈도 없다. 세상 살이 다 의미 없다, 제기랄 거.

박은 이마가 욱신욱신 아파왔다. 얼음주머니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한 여름에 그것도 깡시골동네에서

얼음을 구할 방법은 없으니까.... 잠뜰은 그저 참기로 했다. 혹이 올라오면 흑마법사한테 없애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안 된대도 상관 없다. 목숨이 걸리면 뭐든 못하겠는가. 성형외과에 가야지 왜 자신에게 그걸

물어보냐며 황당해할 얼굴이 눈에 선하지만, 음.

자리에서 일어난 잠뜰이 창 밖을 바라봤다. 하루라도 바삐 움직이지 않으면 당장에 왕국 출품은 고사하고

잡혀가서 사형당할 위기였던 그 때와는 다르게 너무나도 여유로운 하루가 지속되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그때가 미친거지, 여유를 가지는 건 나쁘지 않았다. 나쁜 것이라고 한다면 너무나도 여유로워서 생각이 많아진

것이라고 해야하나. 당장 지금도 드루이드, 이 공쪽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하나 고민하다가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다가 햇볕이 쨍쨍하던 한 낮이었던 창 밖에 슬슬 노을이 져가고 있질 않은가. 한숨을 푹 쉰

잠뜰이 밖에 나갈 채비를 했다. 드루이드 숲에 가려면 한낮보다는 지금이 딱 좋은 시점이긴 했다. 아마

드루이드는 잘 시간에 찾아오는 똥매너 보라며 욕하겠지만, 뭐 지가 꼬와도 어쩔 거야. 지가 자주 찾아오라고

해놓고.

애초부터 복장부터 존나 말도 안 됐다. 치렁치렁한 망토며 셔츠며 더워죽기 딱 좋은 옷으로 한여름 땡볕에

나가는 건 미친 생각이었다. 처음에야 더워죽거나 그냥 죽거나 양자택일이었으니까 그 옷을 입고 싸돌아다닌

거지. 옷을 좀 사야겠어. 볼을 긁적인 잠뜰이 망토를 걸치고는 아랫층으로 향했다. 밤이라 그런지 나무 바닥에

닿는 구두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어디 가려고요?”

“그러게. 이 시간에?”

 

쿵 소리가 그렇게 크게 났는데도 코빼기도 안 비춘 둘이 의자에 앉아서는 고개만 돌려 대충하는 꼬라지가

괜히 신경질났다. 쟤넨 나 빼고 뭐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 직원들과 사장의 관계에서는 당연히 사장이

소외되는 걸 알면서도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도 사장된 도리로써 이 말을 밖으로 꺼내는 순간

제가 쪼잔해보일 건 뻔하니, 결국 잠뜰은 쯧, 하며 혀를 차는 걸로 끝 낼 뿐이었다.

 

“드루이드 만나러. 니넨 뭐하냐?”

“수다 떨어요.”

“그치.”

“할 짓 드럽게 없네. 퇴근이나 해.”

 

제 말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표정이 펴진 덕개가 우렁차게 네! 하며 소리쳤다. 그 뒤로 따라오는 ‘아니 난

쟤 가면 놀 사람도 없는데 진짜 너무하네....’ 하는 흑마법사의 투정은 덤이고. 부산스럽게 퇴근 준비를 하는

덕개와 가지 말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라더를 뒤로 하고 은하수 잡화점을 빠져나온 잠뜰의 눈 앞에는

여느때처럼 고요한 노을지는 마을의 풍경만 있었다. 하나씩 집에 불이 켜지고, 마을회관은 플레전스와 앨리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을은 평화를 되찾은 것만 같았다.

 

*

 

게임으로 치자면 이제 메인퀘스트의 절반을 끝낸 것이나 다름 없었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눈 앞의 마왕을 처리하고 나서 갑자기 생각하지도 않았던 마왕 잔재를 해치우라는 챕터 2가

펼쳐지는 느낌. 잠뜰에게는 이 상황이 딱 그랬다. 이건 말 그대로 챕터 2였다. 눈 앞에 마을을 되살리고 나니

생각지도 못했던 드루이드가 걸렸다. 내가 이것까지 해결해야하나, 싶은 마음이 드루이드의 집을 눈 앞에

두고서도 들지만. 뭐 어쩌겠는가. 잠뜰 말고는 이를 풀어나갈 사람은 마을에 없었다.

보석은 노을을 받아 묘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기묘한 색이었다. 파란 하늘 밑과는 다르게 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색으로 빛나는 것이 괜히 불안했다. 괜히 안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고, 그런 거 있지 않은가.

까마귀가 울면 흉조가 든다는 것처럼 말이다. 미신이긴 하다만.... 잠뜰은 머리를 긁적이며 계단을 올랐다.

 

“잘 시간인데 이제야 오는 거 봐라.”

“어쩔. 요.”

 

발소리를 들었는지 웬 일로 계단까지 마중을 나온 드루이드는 역시 예상대로 타박부터 해댔다. 나 이제 곧

잘 시간인데 방해한다, 매너가 없다, 그나저나 방금 어쩔이라고 했냐...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대면서도 정작 그는

웃고 있었다. 봐봐, 본인도 정작 찾아와주니까 좋다고 웃으면서. 본인이 인정하지 못하는 외로움은 이미 그

안에서 충분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던 거다. 늦은 시간에 찾아오는 건 매너가 아니라는 둥, 너 때문에 늦게

자겠다는 둥 오만가지 잔소리를 다 해대면서도 활짝 웃고 있는 표정이 이상하다는 것도 눈치 못 채는 모양이

웃겼다.

한참동안 잔소리를 하던 공룡은 잠뜰이 테라스 의자에 앉고 나서야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오늘은 뭐 사러

왔어? 뭐 사러온 건 아니고, 그냥요. 그럼 꺼져. 이 아저씨가.

 

“진짜 살 것도 없는데 왔어?”

“원랜 있었는데, 제가 돈을 안 들고 왔더라고요.”

“그럼 꺼지라니까.”

“야.”

“근데 그럼 왜 왔는데?”

“뭐 꼭 목적이 있어야 오나요, 그냥 심심하니까 왔지.”

“내가 니 말동무 상대야?”

“네.”

 

공룡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목적도 없이 찾아온 이유를 찾는 듯이 그의 눈동자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궁금한거겠지. 좋아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싶겠지.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도 서른도 안 먹은 핏덩이가 단

숨에 알아챌 정도로 제 의중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 웃겨 잠뜰은 픽 웃었다.

 

“사실 물어볼 게 있어서요.”

“뭔데?”

 

그제서야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뀐 공룡이 무심하게 말했다. 잠뜰은 잠시 뜸을 들였다. 물어볼

것이라고는 했지만, 본인의 고민이기도 하고 그의 고민이기도 한 질문으로 무엇이 좋을까. 나 외롭다, 이 말

하나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는 잠뜰이 함부로 그 단어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당초 외롭다는 말을

해봤자, 공룡의 성격 상 그럼 애인이라도 사귀라며 잔소리를 할게 뻔하기도 했고. 그래서 잠뜰은 제 외로움을

그리움으로 포장하기로 했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외로움. 별로 특별한 것

없는 나의 고민이자 그의 고민. 잠뜰이 입을 열었다.

 

“공룡씨는 누군가가 너무 그리울 때 어떻게 하세요?”

 

공룡은 말이 없었다. 그는 한참동안을 말 없이, 이제는 노을도 다 져버린 남색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글쎄다. 난 그리운 사람이 없는데.”

“....”

“예전부터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봤더니 그런가. 이종족이 아닌 누군가와 깊게 관계를 쌓아본 적이

없어서.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이종족들이야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테니 엄청나게 그립단 생각이

딱히 들지도 않고. 인간들은... 너무 빨리 죽어.”

“....”

“인간들은 연약하기도 하고. 죽을만한 요인도 너무 많아. 나한테는 손가락이 바늘에 찔리는 수준으로

작은 상처도 너희한테는 치명상일 때가 있잖아. 내가 있다면 치료라도 해주겠지만, 내 시야에 없는 곳에서 내가

아끼던 인간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음. ...난 별로 가정조차 하고싶지 않은데.”

“그래서 인간들이랑은 친해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그런 편이지. 날 매일 찾아오던 인간이 어느 순간 날 찾아오지 않을 때의 감정은 별로... 느끼고 싶지

않은 거라.”

 

공룡의 말에 잠뜰이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 그의 말에는 분명한 어폐가 있었다. 잠뜰이 제 목에 걸린

초록색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인간들과는 친해지지 않으려고 했다는 둥, 아끼던 인간들이 죽는 걸 원하지는

 

않는다는 둥,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그때의 그는 자신에게 본인이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차고 있던 목걸이를

건네주지 않았던가. 본인 스스로 인정하지 못하는 오류에 잠뜰이 말했다.

 

“그럼 이건 저한테 왜 줬는데요?”

“....”

“귀한 거라면서요. 본인이 드루이드로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라면서요.”

“니가 갈 곳에서 내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았으니까.”

“그럼 왜 다시 안 가져가는데요.”

“말 참 많네. 그럼 다시 가져가 줘?”

“아니, 이유가 궁금하다니까요.”

 

잠뜰의 추궁에 결국 공룡이 입을 열었다. 니가 우리 마을을 지켜줬으니까, 그게 내 답례야. 그렇게 쳐.

그의 말에는 불편한 기색이 묻어있었다. 자신이 꽁꽁 봉해두었던 어떤 감정에 대해 접근하려는 누군가, 자신에

대한 방어였다. 잠뜰이 더 말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늘에서는 별이 떨어지고 있었다.

별조각은 땅에 떨어지며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공룡은 그 별을 잡으려는 듯 테라스 밖으로 손을 뻗었다.

그의 손에 닿은 별조각은 당연하게도, 다른 조각들처럼 형체를 잃고 없어졌다. 잠뜰은 그 별을 잡아두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 날, 별조각에 담긴 선조들의 지혜가 도와주었듯 모두가 나서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그 별을

잡아둘 수 없다는 걸 잠뜰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흑마법도, 선조들의 지혜도 아닌 방법같은 건 잠뜰은 몰랐다.

그러니까, 이건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던 거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자, 드루이드는

인간과는 다르게 아주 긴 세월을 산다. 그리고 그와 같이 오랜 세월을 사는 것들, 이종족들의 수는 인간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다. 오래 사는 것들은 필수적으로 인간들과의 관계를 맺을 수박에 없고,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연을

맺은 인간을 떠나보내야한다. 그것들을 무한히 반복할테다. 본인들의 숨이 멎는 순간까지 그들은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소중한 사람들을 보내는 것은 몇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감정일것이다.

입 안이 썼다. 잠뜰이 그의 퀘퀘묵은 감정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그저 그의 오만일 뿐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의 곁에 영원히 있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어쨌든 그에 비해서 너무나도 짧은

수명을 가진 인간이 아니던가. 잠뜰은 고민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너무나도 깊은 신뢰관계를 맺어버린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니가 뭘 물어보고 싶은지는 알겠는데, 난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다.”

“....”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너한테 그 목걸이를 준 건, 믿는다는 말 하나로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아서였어.”

“무슨 사건들이요?”

“생각치도 않았던 사고로 죽는 사람들, 세상 곳곳에 깔린 위험한 요소들. 그 당시에 내가 왜 그랬는진

나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너를 지켜야됐으니까.”

 

나는 이 숲에서 멀어질 수 없고,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알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고. 나는

그저 오랫동안 망조가 든 마을을 그저 보고만 있어야 했는데. 니가 나타난 거야. 이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여기저기 설치고 돌아다니는 모양이 죽기 딱 좋던데, 뭐. 당장 왕실 출품 허가도 못 받았으면

거기서 당장 목이 날아갔을거고. ...너도 알다시피 이 땅에 니가 오기 전까지는 이 마을은 망조가 들어도 단단히

든 마을이었고, 관광객이나 이주민? 택도 없는 소리였지. 네가 없으면, 이 마을을 나 대신 일으켜세워줄 누군가가

또 나타나줘야할텐데 언제 그런 사람이 나타날지도 모르는 노릇이고.

나한테는 널 지키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어.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니가 해줘야했으니까, 그런 막중한

책임을 넘길 땐 너를 지킬 최소한의 신뢰를 줘야하는 거야. 혹여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걸 바로잡을만큼의

어떠한 도구.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

 

긴 공룡의 말이 끝나고 잠뜰이 눈을 끔뻑였다. 공룡이 신뢰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신뢰관계를 맺자마자 제가 보았던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을 때부터 알았다. 신뢰관계,

말로만 들으면 너무나 좋지만 실제로 그 관계에 따르는 책임은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그리고 공룡은 그 책임을

제게 충분히 지고 있었나보다. 잠뜰이 보석을 문질렀다. 반짝거리는 초록색 보석이 손가락 틈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별 빛이 유난히도 밝은 이 동네에서 이 보석은 제 할일을 하고 있다는 듯이 번쩍이고 있었다.

아마도 공룡은 이미 제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허용했나보다. 공룡 또한 그걸 알고 있는 듯이 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다섯살 어린 애라도 알 법한 결말이었다. 자신은 제 수명에 맞게

죽을 것이고 그는, 그가 천년이 넘는 세월동안 착용했었던 그 목걸이를 다시 돌려받을 것이다. 자신이 죽고 난

후에야 돌려받을 그 목걸이가 여전히 반짝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제가 드루이드씨의 신뢰를 받은 첫 인간이라면, 제가 죽고 난 후는 어떻게 하시게요.”

“...그리워하겠지.”

 

천년동안 내가 느껴본 적 없는, 대상이 있는 ‘외로움’을 받아들여야겠지. 그리움은 나를 좀먹을 테고

대상은 생겨버렸으니까. 공룡의 중얼거림에 잠뜰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좋게 그리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잠뜰은 그 목걸이가 다시 공룡에게 돌아가는 순간까지 그의 목걸이를 반짝이게 만들어주겠노라 결심했다.

자신이 죽은 후에 그가 느낄 대상이 정해진 외로움에 공룡이 무너지지 않도록. 손에 잡히지 않는 별조각이

무수하게 떨어지는 이 마을에서 그가 온전한 별을 손에 쥘 수 있도록 말이다. 공룡을 바라보고 있었던 잠뜰이

시선을 돌렸다. 불이 꺼진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의 씁쓸한 표정이 보기 힘들었던 탓이다. 눈을 돌리자 그의

침대 머리맡에 있는 남색 오르골이 눈에 띄었다. 오르골 특유의 편안하던 멜로디가 귀에 울리는 듯 했다.

잠뜰은 여전히 그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그를 안쓰러워하는 것조차 그를 도울 수 있다는 자신의 오만임을

알아버렸다. 오래 사는 것들의 고민을 자신이 해결하겠다는 것부터가 그른 생각이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고, 그를 이해는 하더라도 공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자신은 인간이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그와 친해지지

않는 것이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그가 이미 자신을 본인의 영역 안에 둔 것까지도 알아버린 이

시점에서 잠뜰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와 좋은 이별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뿐이다.

좋은 이별이란 참 어렵다. 남은 사람들이 느낄 외로움과 그리움을, 먼저 떠날 사람이 해결해줄 수 없다는

점에서 가장 어려웠다. 하지만 잠뜰은 좋은 이별이라는, 허상과도 같은 단어를 이뤄보이고 싶었다. 이별은

잠깐이고 외로움과 그리움은 영원하겠지만, 추억 또한 길고 영원한 것 아니겠는가. 결코 손에 잡힐 것 같지 않던

별조각들을 잡아낸 제가 아니겠는가. 잠뜰은 다시 한번 좋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손에 쥐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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