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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묘 서점은 소유권 관련 문제로 이리저리 시끄러웠다. 얼마든지 부르는 대로

입찰하겠다고 하다가 가격이 터무니없니 뭐니, 이런 곳에서는 하루도 더 영업

하고 싶지 않다고 하다가 반연히 고작 그 정도에 양도해줄 수 없느니 뭐니. 물론

약간의 사건 이후로 미련 없이 알바를 그만둔 대학생과는 그다지 상관 없는

이야기임이 틀림없었으나, 알바하던 시절 사라져 행방이 묘연한 책을 원하는

손님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날 부터는 충분히 상관 있었다. 마지막 시험을

치르고 방학에 돌입한 잠뜰이 슬슬 잊혀가는 익숙한 길을 걸었다.

 

마지막 출근날 봤을 적 보다 조금 더 어수선하고 어둑해진 서점 안을 거닐며

잠뜰은 잠뜰의 전 사장을 찾았다. 카운터에 없어 위층을 올라가려다, 의자에

앉아 있는 낯 익은 사람을 발견했다. 공룡. 책등치기고, 남아도는 게 시간인

사람이었다. 책에 몰두하고 있는 남자에게, 그래도 단골이었으니 인사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나? 고뇌하다가, 위층에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잠뜰이 남자의 어깨를 건드렸다.

 

"오랜만이네요, 공사장님."

 

공룡은 코를 타고 내려간 안경을 스윽, 올렸다가, 몰랐다는 듯이 유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여, 알바! 말했다. 알바 아니에요, 그만둔 지 벌써 한 달이

되어가요. 흠흠, 상관없다는 듯 이미 전에 시선을 돌린 공룡이 페이지를 넘겼다.

 

"사장님 보셨어요?"

 

"그 사람 출근 안 한 지 오래됐어."

 

"그럼 서점 일은 누가 봐요?"

 

공룡이 저도 모른다는 듯 (제 집 마냥 들락날락 하는 것을 알면 누구든지 그가

알고 있음을 눈치채고도 남았겠지만) 어깨를 퉁, 튕기고 책을 덮었다. 그나저나

자네는 여기 왜 왔나? 사장님이 책 찾으라고 하셔서요. 책? 공룡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아하하! 소리를 내며 일어나 손을 잡아 끌었다.

 

"내 영월행 일기를 드디어 찾겠구먼."

 

아뿔싸, 책을 원한다는 손님이 공사장이었다니. 잠뜰은 표정을 한껏 구겼다.

손님이 맡긴 책을 제멋대로 팔고, 보내고 하던 잠뜰이라 웬만하면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이고 소정의 사례를 할 예정이었으나, 그 사람이 공룡이라고 하면 말이

다르다. 억만금(진짜 억만금이면 괜찮겠지만 어쨌든 고작 대학생이 그럴만한

돈이 있을리가 없으므로)이라도 고사하고 본인을 괴롭힐 것이 뻔했다.

 

"팔려던 책이 아니고, 잠깐 이 서점 지하에 껴둔 책인데, 아니, 며칠 전에

와서 찾아보니 없더라고."

 

"팔려던 책이 아닌데 왜 지하에 껴둔 건데요?"

 

"알 것 없어."

 

"뭐요?"

 

하여튼 제멋대로야. 공룡이 못 들었다는 듯 계속 말을 이었다. 내가 열심히

찾아본 게 아니라 여기 어딘가에 낑겨져 있을 수도 있어. 아무튼 자네가 좀

도와주겠나? 제가 왜요? 당연히 자네가 해야지. 수현 사장은 책을 그렇게 함부로

팔 위인이 아니야. 자네처럼 무계획에다가 돈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팔았겠지.

욕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 사실이야, 사실!

 

잠뜰은 책을 찾았다. 영월행 일기. 처음 듣는 책 제목이었다. 혹시나 그가

본인을 놀리려는 개수작인지 싶어 인터넷으로 살짝 검색해봤더니 실존하는 책

이었다. 한숨을 푹 쉬면서 이리저리 뒤엉켜있는 책들의 무덤 속에서, 'ㅇ'으로

시작하는 묘비를 찾는다. 그러면서도 잠뜰이라는 묘지기는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 누구에게 떨이의 형식으로 얹어 팔았다는 것을.

 

"사장님?"

 

"왜?"

 

"네이버에 검색하니까 만 팔백원에 팔던데요. 중고는 무려 팔천원. 제가 제

돈으로 사드리면 될까요?"

 

공룡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었으나 지켜본 그의 행실 덕분에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우습다면 모를까. 절대 안 돼! 그 책은 내가 손수 필기하고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같은 책을 사준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냐! 그럼 

렇게 소중한 책을 왜 여기에 놔두고 가셨냐고요! 아, 글쎄! 알 것 없다니까.

맘대로 팔아버린 건 본인이면서. 참나.

 

열심히 찾는 시늉하던 잠뜰이 두 손을 허리에 메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럼

어떻게 해드려요? 뭘? 아니, 진짜. 사장님도 아시잖아요, 제가 그 책

팔아버렸다니까요? 천인공노할 일이야. 돈으로 배상해드려요? 1억. 아이, 진짜.

공룡이 실실 웃었다. 지켜보면서 쌓아 온 데이터베이스에 의거하면, 무언가

음흉하게 생각해 온 것이 있을 때의 흔히 볼 수 있는 웃음이었다. 정말로 원하는

게 그 책이라기 보다는, 다른 것이라는 소리였다. 잠뜰 괴롭히기 범주 안에 있을

무언가. 원하는 게 뭐에요?

 

"말하면 들어줄 건가?"

 

"상식선의 이야기라면요?"

 

"자네 상식은 너무 편협한데."

 

"사장님이 너무 광활한 상식을 가지고 있는 거 아니고요?"

 

"칭찬 고마워."

 

공룡이 흐흐하, 웃으면서 안경을 벗었다. 일단 올라가지, 영월행 이야기는

읽어 본 적 있나? 아뇨. 저런, 책방 알바가 책도 안 읽는다니! 그거랑 무슨

상관, 아니 일단 지금은 알바도 아니고요, 전 그래도 꽤 책 읽는 편이에요. 이번

달에 몇 권 읽었는데? …두 권? 천인공노할 일이야! 정확히 말하자면 그 두 권도

전공 책이었지만 잠뜰은 어쨌든 넘어갔다. 터덜터덜 올라온 잠뜰에 비해

콧노래까지 흥얼거린 공룡이 의자 위에 올려둔 본인의 가방을 들어 안경을 집어

넣고는, 어깨에 메었다.

 

"가자."

 

"어딜요?"

 

"책의 세계로."

 

"뭐요?"

 

"책의 세계로."

 

"못 들은 거 아니고요, 무슨 책의 세계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자네가 모른다고 하니 내가 직접 알려주는 수 밖에."

 

"아니, 필요 없어요. 사장님 책 안 찾으세요?"

 

"처음 이 책을 읽게 된 날부터 바라던 일이야…."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저어, 바쁘거든요? 대학생이라고요, 대학생. 지금 시험이 바람처럼

휘몰아치는데, 바빠서 안 되겠어요.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품 드는 일도

아닌데 매몰차기는, 지금 나의 책을 마음대로 팔아먹었으면서 도망치는 건가?

세상에~! 설마!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성인이 설마? 그래서 돈으로 드리겠다고요!

2억 내놔. 왜 아까보다 올라간 건데?

 

안타깝게도 제멋대로에다가 고집불통인 사람의 의지를 꺾을 방법은 적어도

잠뜰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공룡이 이끄는 곳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하고 오래된 동네의 늙은 아파트 단지였다. 익숙한 듯이

수많은 동 중 하나로 들어가 느린 엘리베이터를 잡아 끈 공룡은 콧노래를 부르며

연이어 본인의 집으로 추정되는 문을 열었다.

 

"누추한 귀객이여, 어서 오시게"

 

"네에, 뭐. …네?"

 

잠뜰이 궁시렁거리면서 신난 발 뒤를 따랐다. 혼자 사는 두 칸 짜리 방은

충분히 넓음에도 불구하고 이리저리 어지럽게 쌓인 책이며 종이며 하는 것들에

의해 위압감 내지는 압박감을 부여했다. 잠뜰도 누구 못지않게 더러운 방에서도

쾌활하게 살아가는 생활력을 보유한 하나의 인간이었으나, 이러한 경치를 보고

나서도 본인의 생활력에 내심 자부심 같은 것이 여전히 붙어 있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집에 가서 오랜만에 청소기나 돌려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잠뜰이 금세

사라진 공룡의 그림자를 애써 쫓았다. 집이 하나의 미로 같다. 어지러운 것은

주인의 머릿속을 잔뜩 닮은 것 같았다.

 

"정리 좀 하고 사세요."

 

"내 나름의 체계가 있는 곳인데, 아, 찾았다!"

 

뭔데요? 내 노트. 소유자의 연식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누렇게 변색된

노트였다. 공룡이 흠흠, 하면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책에 의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먼지 때문인 건지, 잠뜰도 목이 간지러웠다.

 

"옳아. 자네는 어디에서 온 누구이고, 이곳까지 온 연유는 무엇인가?"

 

"예?"

 

"어허."

 

"말투는 갑자기 왜 그래요?"

 

"이래서 책 안 읽는 인간하고는 상종을 하면 안 되는 건데…."

 

"저기요? 사장님?"

 

"대충 동조해줘 봐."

 

제가 왜요? 그렇게 말한 잠뜰이 공룡의 단호한 얼굴을 보고 입을 댓 발

내밀었다. 이게 뭐 하자는 짓이야! …라고 대뜸 소리치기에는 잠뜰 내면의 유교

사상과 조금이나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죄책감이라는 것이 행동을 가로막는다.

그러니까, 지금, 연극을 하자고요? 자네가 연극이라고 생각하면 연극인 것이지.

뭐가 웃기는지 공룡이 낄낄대며 웃었다. 진짜 저 인간이 미쳤나. 아니, 뭐. 미친

사람 같은 게 한 두 번인가? 이번만 동조해주는 거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니까.

시원한 목덜미를 어루만지며 잠뜰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흑묘서점에서 온 잠뜰입니다."

 

"어허, 흑묘서점이라고? 거긴 내가 아주 잘 알지. 그래서 왜 왔는가?"

 

"…사장님이 데려오셨잖아요."

 

"아니! 왜 이렇게 집중을 못 해! 아이고, 이래서 대학은 어떻게 갔대?"

 

"논술 추합으로요."

 

아, 진짜? 그건 몰랐네. 공룡이 본인 턱 주변을 어루만지다가, 아하, 하며

재차 목을 가다듬었다. 무언가 본인이 발생시킨 잘못을 느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제스처였다.

 

"그럼 반대로 한 번 해보자고."

 

"반대요?"

 

"자네가 아까 내가 말했던 대사를 읊는 거지."

 

"어허! 네 이놈! 어디서 온 누구길래 내 집에서 기웃거리느냐!"

 

"굳이 사극 톤까지 할 필요는 없, 반대로 해 보자고 나이까지 반대로 되나?"

 

"아 개그죠, 개그."

 

"아, 그치그치?"

 

"아, 그럼요, 그럼요."

 

"으흠, 나는 우리 집에서 온 공사장이오. 내 책을 좀 찾으러 왔는데."

 

"푸핫! 흐흠, 책? 무슨 책?"

 

"그 영월행 일기라고, 흑묘 서점에 잠시 놔두었던 내 책이오."

 

"그런 책 봤던 것 같기도 한데…."

 

"봤던 것 같은데?"

 

"그, 다른 손님한테 서비스로 얹어드렸습니다."

 

"어허!"

 

"죄송합니다, 나으리. 저의 불찰입니다."

 

"아니 서비스랬다가, 나으리랬다가. 지금 시대 설정이 뭐야?"

 

"퓨전이옵니다, 나으리."

 

"으흠, 불찰? 어허! 내 책 내놔라, 이놈아!"

 

"…그으, 죄송한데 제가 어떤 손님에게 얹어드렸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아서요. 아니, 그리고. 그럼 누가 본인 책 헌책방에 놔두고 가래요?

거기다 놔두면 당연히 내가 우리 서점 물건인 줄 알고, 아이고 손님~

서비스입니다요~ 팁 감사합니다요~ 하고 보내죠!"

 

"사견은 담지 말고."

 

"아휴, 네에."

 

"자네 말이 어느 정도 맞긴 하다만, 어쨌든 법적으로 보면 자넨 도둑이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뚱딴지 같은 소리래요?"

 

"아무튼 법이 그래!"

 

"무슨 법이요, 아니 이 미친 아저씨를 봤나!"

 

"하지만 자네가 이렇게 마음 깊이 반성하니까 내 특별히, 내 책의 이야기를 되짚는 걸로 봐주도록 하지."

 

"예? 참나, 엄…음. 아이고, 감사드립니다요, 나으리."

 

"자, 그럼 영월로 출발하자꾸나."

 

"예?"

 

공룡이 뭐해? 하는 표정으로 방 밖을 나섰다. 강원도 영월? 사색에 질린

잠뜰이 따라 나오니, 공룡은 책에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았던 작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영월 가자면서요? 눈 감고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공룡이,

더 이상 몰입이 안된다는 듯, 에잇! 하면서 일어나 화를 냈다.

 

"도둑질도 손 발이 맞아야 해 먹지!"

 

"어쩌라고요. 원하시는 게 뭐에요?"

 

공룡이 답답한 듯 사설을 풀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딱 두 가지의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책을 끔찍이 아끼어 책 조금의 누른 자국도 용납할 수 없는

사람. 둘째, 책을 최대한으로 활용하여서 형광펜, 밑줄 치기, 책 반으로 나누기,

자르기, 노트로 만들기, 이리저리 훼손을 거치는 사람. 공사장은 그 중 후자다.

그리고 그런 그가 책을 읽으면서 감동받았거나 비판할 거리를 전부 모아 하나의

교과서로 만든 그 책을…

 

"네가 훔쳤잖아."

 

"아니, 훔친 게 아니라고요."

 

"그럼 뭔가?"

 

"잠깐…혼동한 거죠. 다시 말씀해드려요? 잃어버리기 싫었으면 애초에 책방에

놔두고 가시면 안됐다니까요?"

 

"물론 내 과오도 있지."

 

"그렇죠?"

 

"하지만 자네의 잘못이 백 배, 천 배, 만 배 커!"

 

"아휴."

 

하지만 자네가 내 놀이에 참여해준다면 그 정도는 눈물 머금고 참을 수 있단

말야. 책의 내용을 모르니 왜 내가 이런 해괴한 일을 하려는지도 모르겠어.

해괴한 일인 건 알고 있으세요? 이 책의 등장인물들도 우리와 같아. 대답 안

하는 것 좀 봐. 내 참. 여자가 남자에게 책을 돌려달라고 오거든. 남자는 그럼

여자에게 책을 주는 대신, 이 책을 연극으로서 재현해보자고 말 해. 그렇게

이어지는 이야기야. 아, 네. 이를테면 극중극이지. 하지만 우리도 연극으로서

이 이야기를 승화해낸다면? 극중극중극이 되는 거야! 그거 정말 재밌겠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이제 좀 어울려 주면 안 되겠나?

 

"그래요, 좋아요. 대신 조건이 있어요."

 

​"뭔데?"

 

"제가 내뱉는 대사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중간에 멈추거나 꼽주지 마세요."

 

"꼽?"

 

"아시겠어요?"

 

공룡이 잠시 의심 섞인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가늘게 뜨다가, 본인에게 해 가는

건 없을 듯싶었는지 박수를 짝, 치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책을 직접 구현해볼까. 평소에 책은 좋아하는가?"

 

"글쎄요. 좋아한다고는 못 하지만 조금 읽는 편이긴 해요."

 

"한 달에 두 권 읽는 게 책을 읽는 거야?"

 

"뭘 모르시나 본데, 일 년에 두 권 읽지도 않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절반은

될 걸요?"

 

말도 안돼. 충격받은 표정이 웃겼다.

 

"흠흠,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이제 우리 둘 다 노비야."

 

"왜요?"

 

"이 책이, 음, 그냥 잠자코 듣게!"

 

​"네에."

 

"말하자면 책 속 책의 주인공이 노비라는 거지. 각자 주인들의 명을 받고

영월에 있는 단종에게 가는 거야."

 

"실제 있는 책을 기반한 책이에요?"

 

"아니, 허구야. 아무튼 우리 둘이 가서 노산군을 살피고 보고한 이야기를,

우리들이 환생하여서 너는 내게서 책을 가지고 가려고 하는 거고, 나는 책을

돌려주는 대신 연극에 어울려달라고 하는, 뭐, 그런 이야기라고."

 

"조금 다른데요. 우리의 연극은 사장님이 책을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대신

실현되는 것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냥 뭐, 사실 확인?"

 

그리고 작품은 연극이 모두 끝난 후 남자가 여자에게 본인과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물어보고, 여자는 거절해. 그 남자가 마음에 안 들었나 봐요?

…그러겠냐? 이를테면 위험한 자유와 지루한 안전 중 남자는 전자를 고르고

여자는 후자를 고른 거야. 왜 남자가 위험한 자유에요? 왜 위험하고 왜 자유죠?

아니, 중간에 멈추거나 꼽주지 말란 건 자네면서 왜 자꾸 사사건건! 아이, 아니,

이건 흥미와 호기심 때문에, 예? 궁금해서 여쭤보는 거죠. 물어보지 말게나. 에.

 

"하지만요, 사장님."

 

"왜?"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남자죠?"

 

"응."

 

"그럼 작가는 지루한 안전 보다 위험한 자유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나?"

 

"보통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정의가 작가가 원하는 정의잖아요?"

 

"뭐, 듣고 보니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사장님은 전자에요, 후자에요?"

 

"굳이 따지자면 후자일까."

 

"네에? 말도 안 돼요."

 

"뭐가 말이 안돼?"

 

"사장님은 완전 본인밖에 모르는 마이웨이잖아요!"

 

"자네처럼?"

 

"아뇨! 사장님은 저보다 더 하죠."

 

"아닐 텐데."

 

"아니에요."

 

하지만 역시 책을 읽어봐야 알겠어요. 그렇지? 사장님은 설명하는데 정말

끔찍한 재주를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하하, 자네처럼? 아니요? 저, 그럼

끝난거죠? 공사장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 가는길에 선물이라도 하나

줘야겠어. 돈으로 주세요. 아니아니, 책으로 줄거야. 공룡이 책의 무덤들을

헤치며 방으로 들어갔다. 잠뜰도 파묻혀있던 소파에서 일어나 뒤를 따라갔다.

 

"어떤 책을 좋아하나?"

 

"비싸고 얇은 책이요?"

 

"싸고 두꺼운 책으로 주겠네."

 

"에이."

 

가만보자, 이건 너무 비싸고, 이건 쟤한테 주긴 좀 그렇고, 아 이건 내가

열심히 필기해놨는데. 중얼중얼거리면서 무질서하게 정렬된 책들을 헤치는

공룡을 뒤로하고, 잠뜰이 그나마 보기 편한 책상 위를 살폈다. 토지, 홍어, 벗,

태백산맥, 이별의 김포공항, 영월행 일기. 응? 잠뜰이 낯 익은 제목의 책을 들어

안을 살폈다. '절대 안 돼! 그 책은 내가 손수 필기하고 정리해놓은 책이라고.

같은 책을 사준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냐!' 손수 필기하고 정리해놓은 책.

형광펜과 플래그가 그득그득하다.

 

"사장님!"

 

​"어이쿠, 깜짝이야!"

 

"책 여기있잖아요, 여기!"

 

공룡이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그러게. 와, 찾았다! 하하하, 고맙네, 고마워.

잠뜰은 알고있다. 언젠가 누구에게 떨이의 형식으로 얹어 팔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알고 있었는데 일부러 그러셨죠!"

 

들켰다는 듯 공룡이 다른 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같다. 하지만 닫힌 미로에서 그

도망이 원활할리는 만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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